'2011/05'에 해당되는 글 1건

  1. 2011.05.02 이슈와 유행은 지속되지 않는다.
2011.05.02 13:52

한때의 유행상품
한때의 유행서비스
유행어 그리고 한때의 이슈





한때 유행했던 소셜커머스..


지금 유행하는 소셜커머스..
가까운 미래에 '그때 유행했던'이라는 수식어가 붙지는 않을까?


유행처럼 번지던 UCC 제공 서비스

UCC가 세상을 바꾼다.. 언론은 대세를 만들었지만 그 서비스가 수익이 되었었나?

다음은 UCC를 새로운 성장모델로 보고 TV광고까지 집행했었지.

 

한때 유행했던 공동구매의 시장규모는 얼마였을까?

한때 유행했던 조개구이집 전체의 매출은 얼마였을까? 지금은?

다마고치는?  닌텐도는?


당시에는 대세 지나고나면 유행이었던 서비스와 제품의 수명은 왜 짧았을까?

 

10년뒤 혹은 5년뒤.. 빠르면 1년뒤 쯤.
나올법한 뉴스를 상상해서 구성해 보았다.

 

소셜커머스에서 가격경쟁력이 사라진다면 고객은 어디로 갈까?

충성도는?

 

 

예전 조개구이집 열풍이 기억나는가? 다마고치 열풍은? 

유행은 지속되지 않는다.

 

 


유행 : 특정한 행동 양식이나 사상 따위가 일시적으로 많은 사람의 추종을 받아서 널리 퍼짐. 또는 그런 사

회적 동조 현상이나 경향.

 

 

 


골드뱅크로 대표되던 벤처붐 광고사이트

본질적 서비스에서 수익창출을 얼마나 했었던가를 고민..
당연히 사업초기에는 광고주가 있었을터인데.. 그것이 지속되었었던가에 대한 고민..

 

 

 

97년 2월 강남의 한 오피스텔에서 학원 강사였던 아내 류정숙씨와, PC통신 동호회에서 만난 컴퓨터 공학 전공 학생 등 5명이 골드뱅크의 깃발을 올렸다. 미국의 인터넷 시장과 소비자 구매 패턴을 연구한 김사장이 이른 시일내에 사람들의 관심을 모으기 위해 쓴 전략은 ‘광고 보면 돈 준다’라는 것. 지금은 너도 나도 나서고 있는 이른바 ‘프리 마케팅’ 개념을 국내에 처음 도입했다.

골드뱅크 홈페이지에 광고를 내는 업체들은 많은 사람이 자신의 사이트로 들어와 좋고, 광고를 보는 네티즌은 돈을 받을 수 있다니 좋고, 골드뱅크는 배너광고 수익을 올려 좋은 윈 윈 방식의 마케팅이었다. 언론의 지대한 관심 속에서 골드뱅크 사이트가 알려지자 회원이 급증하기 시작했고 골드뱅크는 이들에게 ‘회원의 이익이 곧 회사의 이익’이라는 모토를 내 걸고 회사 이미지를 가꿔 나갔다.

물론 수익은 배너광고와 회원들을 상대로 한 인터넷 쇼핑이었다. 그러나 큰돈이 들어오지 않는 상태에 서 시설투자가 계속되다 보니 자금은 금방 바닥났다. 창투사를 상대로 투자 설명회도 많이 했지만 선뜻 투자하겠다는 곳이 없었다. 여기서 김사장은 회원들에게 투자를 받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것이 국내 처음으로 시도된 인터넷 증자였다.

1,2차에 걸친 인터넷 증자로 골드뱅크는 9억원의 자금을 조달했다. 인터넷 증자는 단순히 자금조달 효과만 가져온 게 아니었다. 언론을 통해 엄청난 홍보 효과를 누렸고 무엇보다도 골드뱅크 회원은 회원을 넘어선 든든한 후원자라는 인상을 주었다.

인터넷 기업에 경쟁자가 없을 때 바람을 일으켜 인터넷 선두주자라는 인식을 심어놓는데 성공한 골드뱅크는 98년 코스닥 시장에 진입한다. 회사 설립 1년6개월 만에 기업을 공개하는 신기록을 수립하면서. 등록한 그 해 골드뱅크는 매출이라고 해봐야 12억7000만원, 게다가 5억8700만원의 손실까지 낸 그야말로 왜소한 회사였을 뿐이다.

그러나 코스닥 등록 초 처음 얼마간 주춤하던 골드뱅크의 주가는 가파르게 상승했다. 골드뱅크 주식이 이처럼 급상승한 이유는 여러 면에서 찾을 수 있다. 우선, 전반적인 경기회복 속에서 시중자금이 주식 시장에 몰려들어 증권시장이 폭발적인 활황세를 맞았다. 또 벤처기업 육성차원에서 정부가 코스닥 시장 활성화를 공언하고 나선 것도 한 가지 요인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골드뱅크의 주가를 끌어올린 것은 인터넷 기업이라는 사실이었다. 야후나 아마존 등 미국의 인터넷 기업들 주가가 나스닥에서 폭등한 것처럼 국내에도 이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그러나 국내에도 인터넷 사업 붐이 불고 날고 기는 젊은이들이 인터넷 사업에 뛰어들었을 때 골드뱅크는 이미 코스닥에 입성해 깃발을 휘날리고 있었던 것이다. 인터넷 사업이야 말로 기존 어떤 사업보다도 시장 선점효과가 큰 사업. 1,2등 외에는 생존 자체가 보장되지 않는 인터넷 분야에서 깃발을 먼저 꽂는다는 것은 그만큼 높은 가치를 인정받는 비결이다.

바로 이런 환경 속에서 코스닥에 등장한 골드뱅크가 투자자들에게 매력적인 기업이 된 것이다. 불과 1년 전만 해도 투자를 기피했지만 인터넷 사업이 새로운 경제 조류로 자리 잡게 되자 돈이 몰리기 시작했다.

골드뱅크의 주가는 10만 원을 훌쩍 뛰어넘어 올 4월 주당 500원으로 액면분할 한 뒤 5월 중순 3만1200원까지 치솟았다. 액면분할 이전 가격으로 치면 주당 31만2000원으로 40배 가까이 뛰어오른 것이다. 주가가 너무 높게 오른 것 아니냐는 말도 나왔지만 김사장은 인터넷 시장의 성장 잠재력을 볼 때 얼마든지 더 오를 수 있다고 큰 소리를 치며 다녔다. 인터넷 전도사를 자처한 김사장은 세미나와 강연회의 단골 강사로 인터넷 시장의 성장 가능성을 역설하고 일부에서 제기되는 골드뱅크에 대한 의혹을 일축했다.

 

 

 

"2010년 시작되어 2011년은 소셜커머스의 광풍이었다. 연일 언론에서는 티몬, 쿠팡, 워메프, 그루폰의 이야

기를 다루었고 그들의 성공스토리와 그들의 매출은 항상 언론의 관심을 받았다. 그러나 지나친 광고비 지출과 낮은 진입장벽, 제휴업체의 서비스에 대한 소비자의 실망등으로 이용고객은 가격에 의해 움직이는 체리피커가 되었고 경쟁력있는 제품과 서비스에 대한 쿠폰을 지속적으로 출시하지 못하게 되면서 서서히 고객의 관심에서 멀어지게 되었다."

 

 

 

 

허시파피는 한때 미국에서 크게 유행한 캐주얼 신발이지만 94년 무렵에는 연간 판매량이 3만 켤레를 밑돌며

생산이 중단될 위기에 처해 있었다. 그러나 94년 말부터 맨해튼 도심의 클럽과 술집에서 이 신발을 신은 사

람들이 조금씩 눈에 띄더니 95년 가을부터 주문이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그해 허시파피는 43만 켤레나 팔렸

고, 다음해 매상은 4배나 늘었다. 최초로 허시파피 선풍을 일으킨 사람들은 의도적으로 허시파피 판매량을

늘릴 생각이 없었던 게 분명하다. 그들이 애써 재고품 가게를 뒤져 허시파피를 사 신은 이유는 역설적이게

도 사람들이 더 이상 이 신발을 신으려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다 우연히 두 명의 유명 패션 디자이너

가 자신의 의상과 매치시켜 이 신발을 이용하면서, 1년 뒤 사라질 뻔했던 허시파피는 유행의 상징이 됐다.


 

Posted by 마케터 염소똥

댓글을 달아 주세요